3. 어느 물 분자의 여행기

아래 그림에서 물 분자 모형을 볼 수 있다. 이 물 분자가 얼마나 작은지를 보통사람은 상상할 수 없다. 우주에서 우리 은하에는 태양과 같은 별이 약 천억(1011) 개 정도 있는데, 이러한 은하가 또 약 천억 개 정도 더 있는 것으로 추정됨으로, 우주에 있는 (화성, 목성 등 행성이 아닌) 별(항성)의 개수는 모두 1011 x 1011 = 1022 정도가 된다. 한편 물 18g의 물 분자 수는 모두 6.022 x 1023개임으로 우주에 있는 모든 별보다 약 10배가 더 많은 셈이 된다. 겨우 18g의 물에 이렇게 많은 엄청난 수의 물 분자가 있다면, 도대체 물 분자는 얼마나 작단 말인가!

아래는 이렇게 작은 물 분자의 활동 상태를 열역학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공식에 의존하여 물리를 배우면, 그 지식이 추상적이어서 머리에 오래 남아있지 않고 잘 지워진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인 물 분자의 활동모형을 만들려고 고민을 좀 해 설명한 것이다.


[온도와 분자의 운동속도와의 관계]
나(H2O)는 자동차 실린더 안에서 물분자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는 2000°C가 넘는 고온이었으나, 피스톤을 밀어내면서 대기로 나왔을 때는 겨우 300°C 정도로 운동량의 대부분을 잃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마구 날랐다. 지구 인력권을 벗어나 우주로 여행하고 싶었으나, 이것은 한갓 꿈이었다. 지구 인력권을 벋어나기 위해서는 적어도 초속 12km 속도 이상으로 비행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지금 겨우 초속 900m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더군다나, 내 앞을 가로 막는 공기 분자들과 충돌하여 나는 운동량을 많이 빼앗겼음으로 불시에 (35°C 온도에 해당하는) 650m/s 속도로 비행하는 신세가 되었다.


[참고]
위의 속도는 물분자를 이상기체로 가정하고, 입자의 내부에너지와 온도와의 (다음) 관계식에 따라 계산된 수치이다.
Eaver = 3/2 k T 즉 k T = 1/3 mv2rms

여기에서 k 는 볼츠만 상수(1.3805*10-23 J/°K)이고, T는 절대온도, m은 입자의 질량, vrms은 입자의 제곱평균속도(Root-Mean-Square = 1/N ∑v2)이다. 같은 분자로 구성된 계(System)라 할지라도 모든 입자가 같은 속도로 운동하지는 않는다. 위 그림의 그래프는 절대온도 800°K인 산소분자의 속도분포를 보인 것이다. 그래프로 보인 바와 같이, 빨리 운동하는 입자도 있고 또 매우 느리게 운동하는 입자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평균속도(rms)는 위의 공식을 만족한다.
(k T 3/m)1/2 = (1.3805 * 573 * 3 * 6.022/18*1000)1/2
= 891 m/s
따라서 분자량 18(1/(6.022*1023)*18/1000kg)인 물분자가 온도 300°C(573°K)일 때 평균 운동속도는 위와 같이 계산된다.



[중력으로 온도감소]
그래도 나는 더 높이 오르고 싶었다. 그런데, 위로 오르면 오를수록 내 앞을 가로막는 공기 입자들은 적었으나, 마치 공중으로 치솟던 골프공이 지구 중력에 끌려 다시 내려오듯이 나는 또 중력으로 감속되어 나의 온도는 10°C 정도로 떨어졌다. 이 결과로 나는 상당히 높이 올라, 하늘에 구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구름 친구들은 나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고 몇몇이 모여 손에 손을 맞잡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나와 같이 빠른 속도(620m/s)로 비행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손잡고 춤추는 속도는 나와 거의 같았다. 즉, 온도가 같았던 것이다. 나는 그들과 합류하고 싶어 그들에게로 달려갔으나 그들도 나와 같은 속도로 운동하고 있어 나는 같은 속도로 튕겨났다. 낮은 속도로 진입해야 (충돌해야) 그들과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름 속으로]
나는 나보다 덩치는 더 크지만 속도가 나보다 느린 질소 분자를 만났고 (온도가 같으면 입자의 운동에너지가 같아야 함으로 질량이 큰 입자는 질량이 작은 입자보다 속도가 느림) 마침 그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비행하고 있어, 나는 이 질소분자의 뒤쪽으로 충돌할 수 있었다. 결과 나는 크게 감속되었고, 이어 구름 친구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의 손을 붙잡을 수 있었다. 튕겨날 뻔 했으나 여러 친구들이 붙잡아 주어 (즉, 인력이 작용하여) 나는 그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얼마 후, 나는 홀로 비행하고 싶었으나 친구들이 손을 노아주지 않아 무리(구름)를 떠날 수는 없었고, 바람 따라 하늘을 여행해야 했다.

[구름의 양(+)전하]
바람 따라 여행 중에, 어떤 친구는 껍질에 구멍이 나버렸다. 우리들의 겉껍질은 8개의 전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껍질의 전자가 그만 바람에 씻겨 빠져나간 것이다. 이러한 친구들이 매우 많았다. 지상에는 전자가 엄청나게 풍부해서 껍질에 전자를 바로 채워 넣을 수 있었음으로, 우리들은 지상가까이 내려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우리는 바람 따라 떠도는 신세인지라 마음대로 지상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피뢰침의 작용]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자) 껍질에 구멍 난 (전자를 잃어버린) 친구들이 들어만 갔고, 날씨는 한여름으로 몹시도 무더웠다. 날씨가 무더워지자 지상의 물 입자들이 몰려들어 우리(구름)의 덩치는 매우 커졌다. 그러던 어느 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들은 수축해서 밀도가 커졌음으로 (수증기의 밀도가 증가하여)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고, 껍질에 구멍 난 친구들은 힘을 모아 지상의 전자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침, 저 멀리 (끝이 뾰쪽한 도선에서 마치 전자총처럼 전자를 발사하는) 피뢰침으로부터 지상의 전자가 우리를 향해 날라 와, 우리가 지상가까이 도달했을 때, 우리는 전자를 거의 보충하게 되었다.

[번개와 벼락의 이해]
그러나 건너편의 구름 친구들은 그만 사고를 내고 말았다. 수억 볼트에 달하는 우리들의 전기장의 세기는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함으로 지상가까이 내려가면 엄청난 위력을 내는데, 그곳에는 피뢰침이 없었음으로, 지상가까이 내려갈 때까지 구멍 난 전자껍질을 메울 전자를 보충하지 못한 것이다. 즉, 그들은 수억 볼트에 해당하는 엄청난 전기장을 지상에 가하게 된 것이다. 이 엄청난 전기장으로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온화된 미세한 입자가 큰 나무 가까이 공중을 떠돌고 있었는데, 이 이온 입자가 우리의 강력한 전기장에 끌려 엄청난 속도로 가속되어 날라 오다가 공기분자와 충돌했고, 그 충격으로 공기분자가 쪼개지면서 공기분자가 이온화된 것이다. 이리하여 이 음이온 입자는 구름을 향해, 양이온 입자는 지상을 향해, 구름의 전기장으로, 또 엄청 빠르게 가속되어 날아가다가, 또 공기분자와 충돌하게 되고, 결과 또다시 이온 입자가 생겨나고, 결국 기하급수적으로 (1에서 2로, 2에서 4, 8, 16으로) 이온 입자가 증가하게 되어, 마치 공중에 벌건 불기둥처럼 보이는 전기통로(번개)가 새겨난 것이다. 이 통로를 통하여 건너편 구름은 순식간에 전자를 보충할 수 있었으나, 아래 지상의 큰 나무는 전기통로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결국 불타버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벼락 맞았다고 했다.

[기화열]
저기압으로 기온이 더 내려가, 우리는 서로 엉겨 붙게 되었고, 결과 물방울로 되어 무거워져 지상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비라고 불렀다. 나는 깊은 산에 떨어져 지하로 스며들게 되었고, 캄캄한 지하에서 낮은 곳으로 계속 이동하여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가을이 지나고 몹시도 추운 초겨울이었다. 나는 동료들과 함께 산기슭 계곡을 따라 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예전처럼 하늘을 비행하고 싶었다. 그러나, 동료들의 손을 뿌리치고 공중으로 비행하기 위해서는 539cal/g (엄밀하게는 1611.093cal*10-23 = 539cal/g*18g/NA) 의 에너지가 필요했었으나, 나에게는 그런 에너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 재수가 좋아 빛의 전자파로부터 이 에너지를 흡수하거나, 또는 빠른 속도로 우리와 충돌하는 공기분자로부터 운동량을 얻어 단숨에 공중으로 뛰어 오른 녀석들도 있었고, 또 어떤 친구는 뛰어 오르다 우리들의 인력에 끌려 되돌아오기도 했다.

[물이 위에서부터 어는 이유]
날씨는 점점 더 추워졌고, 나의 온도는 4°C 이하로 내려갔다. 4°C 이상의 온도에서는, 우리도 모든 기체와 액체에서처럼 온도가 높은 무리들이 더 활발하게 운동함에 따라 그 체적이 컸음으로 온도가 낮은 무리보다 더 위에 위치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리는 온도가 4°C 이하로 내려가면 손발이 뻣뻣해져 손발을 쭉 뻗어야 했고, 결과 우리 무리들은 잔뜩 움츠린 4°C의 무리들보다 부피가 더 커져서 더 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물표면의 공기입자들은 우리보다 더 낮은 속도로 날아와 우리와 충돌하여 우리의 운동량을 뺏어가는 일이 빈번했고, 결국 우리는 운동속도가 점차로 더 느려져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진동만 해야 하는 고체(어름) 신세가 되었다. 모든 액체는 밑에서부터 어는데, 우리 물만이 위에서부터 얼어, 우리는 결과로서 물 표면에 일종의 보온벽을 구축하여 강이 모두 어는 것을 방지하게 된 것이다.

[승화열]
아주 드물기는 하나, 어떤 친구는 얼음이 된 상태에서도 마치 고체 탄산가스(드라이아이스)나 나프탈렌처럼 무리를 탈출하여 공중으로 비행하기도 했다. 즉, 619(80+539)cal/g의 에너지를 별안간에 흡수하고 공중으로 단숨에 뛰어오른 것이다. 우리는 0°C 어름상태에서 80cal/g의 에너지를 얻으면 액체 물로 될 수 있고, 또 539cal/g의 에너지를 얻으면 기체(수증기)로 될 수 있는데, 이들 에너지를 한꺼번에 얻은 것이다. 아마도 덩치가 큰 질소분자기 고속으로 날라와 얼음 벽면의 입자와 충돌하여, 퉁겨낸 것으로 여겨진다.

[융해열]
봄이 와 기온이 높아지자, 우리에게 달려들어 충돌하는 공기입자들의 속도가 우리가 진동하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따라서 충돌할 때, 우리는 공기 입자들의 운동량을 얼마간 뺏을 수 있었다. 우리는 아직 제자리에서 춤을 추는 상태이었지만 점차로 활발하게 진동했고, 마침내 80cal/g의 에너지를 얻어 자유스럽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얼음에서 물로 변신한 것이다. 우리는 아래로 흘러 바다에 도달했다. 바다는 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물이 영하에서도 얼지 않는 경우]
바다에는 소금(NaCl) 입자가 있었는데, 이들 중에 원자번호 11번인 나트륨(Na)은 최외각 전자껍질을 8개로 유지하기 위하여 전자 1개를 염소(Cl)에게 넘겨주고 양(+)이온으로 행세하고 있었고, 원자번호 17번인 염소는 8개로 채워져야 하는 최외각 전자껍질에 구멍이 나 있었으나, 이 구멍을 나트륨의 전자(1개)로 메우고 음(-)이온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전기력으로 늘 우리 몸에 달라붙어 있어, 우리는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도 손발을 쭉 뻗어 규칙적인 결정구조를 만들 수 없었다. 즉, 바다에서는 얼음으로 변신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우리는 좁은 틈새로 스며들면 손발을 쭉 뻗어 규칙적인 결정구조를 형성할 수 없음으로 빙점이 낮아지는 특징도 있다. 나는 정처 없이 바다를 여행했다. 아, 언제나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