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

세계 수많은 국가들 중에 G7에 드는 선진국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읽고 쓰기 좋은 문자를 갖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사용하는 문자가 좋지 않으면 절대로 과학기술이 발달된 선진국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다음은 문자가 과학기술과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하여 분석한 글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나 뉴턴의 만류인력 등 과학기술 분야에 훌륭한 이론들의 대부분(95% 정도로 알고 있으나 문서로 확인하지는 못했음)이 30세 전에 이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위대한 과학자들 대부분이 30세를 넘긴 후에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지 못하고 젊은 시절에 발견한 이론을 좀더 다듬고 후학을 양성하며 생을 마감한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 분야에서 위대한 이론을 새롭게 이룩하기 위해서는 누구도 (선조들이 이룩해둔 업적) 기본학문을 반드시 30세 이전에 공부해 알고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된다. (참고: 뉴턴의 만류인력의 법칙은 25세 쯤에 구상하고 20년 후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수학적으로 설명했음)

사람은 태어나서 부모로부터 말을 배워 문자를 배우고, 다음엔 문자를 통해서 선조들이 이룩해둔 학문을 배우게 된다. 그런데 문자가 어려우면 문자를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됨으로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그만큼 늦어지게 된다. 만약 선조들이 이룩해둔 기본학문을 배우는 것만으로 나이 30을 한참 지나게 된다면 적어도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위대한 발견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면 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왜 선진국이지 못하고, 또 위대한 역사적 발견을 해내지 못했느냐 하는 의문이 따른다. 한글은 세종대왕(1418-1450재위)이 당시 귀족들 몰래 만들어 공포(1446년)하고 강제로 사용케 하였으나, 연산군에 의하여 (비난 대자보를 막 붙임으로) 사용금지령이 내려져 조선왕조가 그 명을 다할 때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를 않았다. 좋은 문자를 두고도 사용하지 않고 어려운 한자를 사용한 조선왕조가 일본에게 먹힌 것은 어쩌면 필연일 수도 있다.

한글이 교육의 도구로 또 일반 생활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이다.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국가가 남북분단 상태에서도 그나마 경제성장을 향하여 달려볼 수 있었던 시기는 박정희 육군소장 516 쿠데타 이후이다. 노년층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그래도 독재는 했으나, 경제성장을 이룩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기념관을 세우고 있다. 좀더 심사숙고해보자. 왜 우리는 단시일에 그동안 정치가 그렇게 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더군다나 남북이 대치하여 많은 국방비 지출에, 젊은이들이 도중에 학업을 중단하고 병역의무를 필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 해답은 우리에게 한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에게 한글이 없었다면 우리 국민이 모두 IQ 150 이상의 천재라 할지라도 지금 우리의 경재성장은 절대로 이룩될 수 없었을 것이다. 잘해야 필리핀, 태국 정도일 것이다.

박정권 시절에 오일 파동이 있었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불황이었으나, 우리는 중동건설 붐을 맞이하여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만약 우리에게 한글이 없었어도 이 중동건설 붐이 가능했을까? 천만에 말씀! 절대로 불가능하다. 건설현장에서 아무리 단순한 작업일지라도 문자해독이 안되는 사람은 일을 할 수 없다. 한글을 쓰는 우리는 정신박아가 아니면 초등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을지라도 문자해독이 가능하다. 따라서 건설현장에서 단순한 일꾼으로는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문자해독이 가능하기 위해서 상당한 교육이 따라야 하고 따라서 그만큼 비싼 임금이 지불되어야 한다. 즉, 국민의 교육량 대비 생산성에 있어서, 어떠한 나라도 우리의 경쟁상대가 될 수 없다. 때문에 전쟁의 폐허에서도 우리는 세계가 놀라워할 만큼 고속으로 경제성장을 이룩한 것이다. 즉, 고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독재 덕이 아닌, 세계 제일의 훌륭한 문자 한글 덕택인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인 미국의 (문장을 해독 못하는) 문맹률은 약 10%이다. 우리는 정신박아가 아니면 설사 초등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을지라도 문자해독은 가능하다. 요즈음은 유치원 아이들도 만화책을 보고 낄낄 웃는다. 예를 들어,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한, 한국과 미국의 어떤 두 젊은이가 있고 이들은 각각 시골 아버지 밑에서 농사일을 거들고 있다고 가정하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장에 가서 어떠한 농약을 사서 논에 뿌리라고 지시했다면, 이 실행가능성은? 우리의 젊은이는 대부분 농약의 사용법을 읽어 그 스스로 농약을 살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의문이다. 문자가 읽어지기만 한다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으련만 상당히 교육을 받지 않고는 문자를 읽을 수가 없으며, 문자해독이 안되면 농약의 사용법을 몰라, 농약을 스스로는 살포할 수는 없다. 만약 이 젊은이가 생산 활동을 못하면 이 젊은이는 누군가가 먹여 살려야 함으로, 결국은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람은 모든 생활을 문자와 더불어 하게 된다. 문자를 통해서 배우고 문자로 기록하고, 문자에 의존하며 생활하게 된다. 따라서 문자가 좋지 않으면 모든 생활/생산 활동에 시간을 더 많이 소비하게 된다. 모든 가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평가되어야 한다. 모든 가치의 기준인 시간은 우리에게 어김없이 찾아오고 냉정하게 가버린다. 모든 사람들은 주어진 시간을 다 사용하면 결국은 소멸하도록 되어있는데, 세상에 태어나 주어진, 이 한정된 시간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생산하고, 또 여가를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그 활동에 사용하는 문자의 효율에 달려있다. 즉 시간대비 효율에 있어서 문자가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문자가 국가의 경제적 경쟁력에 제일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결론이 된다. 문자에 따라 한 나라의 장래가 바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읽기 쉬운 문자 덕이다. 그러나 일본의 문자로 각기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는 가지 수는 불과 127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동음이어가 많아 만화책에도 한자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또 외래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문자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단어를 창출하여 사용해야만 한다. 또 중국은 어떠한가? 중국은 약 8만자의 문자로 약 800개 정도의 각기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24자의 한글로 (조합의 수는 1만자 이상) 소리 낼 수 있는 가지 수가 약 2700개 정도이다. 따라서 그들은 우리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내가 젊었을 때, 좀 배웠다는 어른들이, 일본이나 중국은 국가적 자존심이 강해서 외국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자국어로 변환하여 사용한다고, 우리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나는 그것이 맞는 말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외래어를 그대로 표현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자국어로 변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중국인이 그들의 문자로 Hand-Ball을 표현할 수 있을까? 없다. 수구라고 하든가 소리가 비슷한 어떤 다른 단어를 정의해야 한다. 일본인이 Extractor를 엑기스로 가죽 Lather를 내자라고 말한다. 나는 한동안 이 내자가 인조가죽을 의미하는 줄로 알았다. 일본문자에는 를 기록할 문자가 없다. 따라서 Other는 아자로 소리 낸다. 아마도 문자로 기록할 수 없으면 소리도 낼 수 없는 모양이다. 아니면 소리를 낼 수 없어, 해당 문자를 만들 필요가 없었을까?

그러나 우리는 한글로 어떠한 외래어도 거의 비슷하게 소리 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굳이 변환할 필요가 없어 외래어를 한글과 막 섞어서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 경제발전에 얼마나 크게 작용하고 있는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지 못한듯하다.

앞으로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면 세계최고의 문자를 사용하는 우리나라가 세계최고의 선진국이 되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그 시기가 우리의 정치/교육 제도에 영향을 받아 좀더 빨리 오느냐 아니면 좀 늦느냐 하는 것만이 문제이다. 에디슨이 살았던 시절,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해가 1904년으로, 불과 100년도 채못되어 과학기술이 이만큼 발달한 것을 감안하면, 그 시기는 예상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다.

우리는 그 때를 대비하여 문자가 없거나 어려운 문자를 사용하는 국가에 한글문자를 수출하여 세계지도국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한글은 어떠한 소리도 거의 원음에 가깝게 표현 가능함으로 그 나라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글문자로 그 나라말을 표현할 수 있다. 다음은 휴대폰과 컴퓨터를 통해서 한글문자가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을 가정한 것이다.

한글문자가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
휴대폰에 일본말처럼 발음이 단순한 언어는 영문자로 입력하고 변환키로 그들의 문자를 입력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몽골 또는 중국인의 다양한 발음을 알파벳으로 소리내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한글문자로 입력하고 변환키를 사용하여 자국어로 변환하는 것이 보다 더 쉽다. 이렇게 한글문자를 통해서 자국의 문자를 입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별도의 교육도 필요 없이, 매뉴얼에 한글로 소리 내는 방법을 알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결국 한글문자는 유행할 것이고, 주로 젊은이들은 변환 없이 아예 한글문자로 의사소통을 할 것이다.

한편, 문자가 통일되지 못한 몽골은 지금 절박한 처지임으로, 한글과 컴퓨터, 몽골 유학생, 뜻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민간단체가 협력하여, 한글문자로 몽골문자를 입력하는 문서편집기를 만들어 사용하도록 해준다. 그러면 몽골인들은 한글문자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대다수 국민들이 컴퓨터와 더불어 자연스럽게 한글문자를 알게 될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한글문자에서 몽골문자로 변환하는 불편 없이 바로 한글문자를 공식 국어문자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몽골은 후세를 빠르게 교육할 수 있음으로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인접국가로 유행할 것이고, 결국 아랍국가도, 또 중국도 한글을 자국 말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전쟁에서 최첨단 무기(한글문자)를 사용하지 않고는 대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필연적으로 한글문자는 로마자와 더불어 세계의 문자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끝-

문자의 속성
좀 뭘 안다는 지식층은 초등학교에서부터 한자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우리말의 대부분이 한자로부터 유래되었음으로 한자를 알아야 본래의 의미를 잘 깨달을 수 있단다. 실로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

엄밀히 따져보면, 말(낱말)이 먼저 있고 (기준이고) 이 낱말을 기록할 문자로서 뜻과 소리가 적합한 한자가 (차용) 사용되었으며, 적당한 한자가 없으면 그냥 그대로 (즉,한글로) 전해져 왔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같은 한자를 한중일이 제각기 다르게 소리를 내는 것이다. 만약 한자문자가 기준이었다면 한중일이 한자를 같은 발음으로 소리 내야 한다. 구체적인 예로서 훈민정음에 첫 자 '훈'을 예로 들면, 우리말 소리 '훈'에 한자를 사용하기 이전부터 '가르치다(訓)', '연기에 그을리다(焄)', '공을 세우다(勳)', 등의 뜻이 이미 있었다고 봐야 한다. 원시사회가 점차로 발달함에 따라 문자가 요구되고 이러한 '훈'소리를 기록할 문자로서 뜻이 통하는 한자 訓, 焄, 勳 등이 차용되어 사용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 낱말을 기록하고 소리내기 위해서 중국 한자가 우리 한자로 재정의 되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한자로 기록할 수 없는 낱말만을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말은 시대에 따라 그 뜻이 변하고 소멸하기도 하며 또 생겨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훈장에서 선생/교수로, 서당에서 학교로 변해간다. 또 낭만적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 서구문명이 들어오기 전에는 없었던 말이다. 서구문명이 전해지면서 Romantic이라는 단어를 기록할 문자가 필요함으로 뜻과 소리가 가장 가까운 낭만 낱말이 생겨난 것이다. 여기에서 낭만의 본래 뜻이 물결/파도를 뜻하는 낭(浪)자와 어지럽고 넘쳐흐름을 뜻하는 만(漫)자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낭만적이라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임금 王자를 모르는 유치원 아동들도 왕따를 알고 왕언니 또는 왕이모라고 경우에 따라 낱말을 만들어 사용한다. 문장에서 Microsoft보다는 MS가 또 엠비시보다 MBC가 보다 더 빨리 인식된다. 아동들의 사고에 낱말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능력이 자동적으로 발달되어 있으며 우리들의 두뇌가 복잡한 것보다 간단한 것을 더 빨리 인지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정세는 한가롭게 문자를 가르치는 훈장/서당 수준에서 지식을 바쁘게 가르쳐야할 선생/학교 차원으로 급변하고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부터 더군다나 많은 시간을 요하는 한자문자를 가르친다는 것은 국가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끝- 2002.10.09. 한글날에